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일상

“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” – 김신조와 청와대 무장공비 습격 사건의 전말

by 기름띠지식 2025. 4. 9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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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은 사건,

그리고 그 중심에 있던 남파공작원 김신조.

 

그의 삶은 단순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이었습니다.

이번 글에서는 1968년 청와대 습격 사건의 흐름을 타임라인 형식으로 정리해봅니다.


무장공비김신조
남파 무장공비 김신조

🕰️ 1967년 말 – 김일성의 지시

북한 김일성 주석은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해 남한 정권을 흔들자는 목적으로 특수 부대를 조직합니다.

 

이 부대가 바로 124군 부대. 이들은 산악 전투, 도시침투, 사살 훈련 등 고강도 훈련을 받으며,

대한민국의 심장을 노릴 준비를 합니다.

🗓️ 1968년 1월 17일 – 군사분계선(MDL) 침투

31명의 북한 특수요원은 눈 덮인 북녘에서 출발해

밤새 도보로 남하하며 군사분계선(MDL)을 넘습니다.

 

그들의 목표는 오직 하나, 청와대 습격 → 박정희 암살.

🚶‍♂️ 1월 19일 – 서울 입성 직전

이들은 대한민국 군인으로 위장한 채 서울 불광동 북한산 자락까지 접근합니다.

당시 민가에 들려 “수색대 훈련 중”이라며 안심시키는 등 위장술도 사용했습니다.

🔫 1월 21일 – 경복궁 앞에서 총격전

서울 도심 진입 중 우연히 마주친 경찰관이 수상한 낌새를 느끼고 질문하자,

공비들은 계획을 포기하고 무차별 총격을 개시합니다.

 

시민, 경찰, 군인 포함 26명 사망, 66명 부상이라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.

⚔️ 1월 22일~23일 – 전면 수색 작전

대한민국은 서울을 중심으로 사상 최대 규모의 무장 공비 수색 작전을 전개합니다.

경찰과 군은 산악 지형과 시가지 곳곳을 샅샅이 뒤졌고,

그 결과 대부분의 공비가 사살되거나 자살합니다.

🧍‍♂️ 단 한 명의 생존자 – 김신조

공비 31명 중 유일하게 생포된 인물, 김신조.

그는 체포 당시 “박정희 모가지 따러 왔수다”라는 발언으로 전국에 충격을 안깁니다.

하지만 이후 정부의 설득과 본인의 선택으로 귀순하게 됩니다.

🙏 귀순 후 목회자의 길

귀순 이후 김신조는 반공 교육과 방송 출연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고,

1997년에는 목사 안수를 받아 종교인의 길을 걷습니다.

 

그는 생전까지도 “북한의 실체를 알리는 것이 나의 사명”이라고 말하며 안보강연 활동을 이어왔습니다.


📌 김신조 사건의 의미

  • 냉전 시기의 남북 간 무력 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았던 대표 사례
  • 청와대에 실제로 무장공비가 진입한 유일한 사건
  • 이후 대한민국 안보 시스템의 대대적인 개편 계기

2025년 4월, 김신조 목사가 향년 83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.

 

그의 생애는 단순한 공비를 넘어서,

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굴곡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사로 남게 될 것입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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